영신행차를 바탕으로 새롭게 만든 강릉단오제의 문화콘텐츠 신통대길 길놀이의 전체적 내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강릉단오제의 길놀이 맥락에서 신통대길 길놀이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읍면동의 주민들이 각자 주제를 가지고 놀이를 꾸며 참여하는 신통대길 길놀이의 현장 모습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신통대길 길놀이는 음력 5월 3일 국사성황을 모시고 남대천에 나가는 영신행차를 할 때 읍면동 단위의 시민들이 직접 놀이를 꾸며 참여하는 행사입니다. 강릉시민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놀이를 통해 진정한 축제정신을 살리고 대화합을 도모하고자 2011년 강릉단오제위원회가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신통대길 길놀이는 오로지 축제를 풍성하게 하려고 만든 행사는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4월 보름 대관령 국사성황신이 강릉시내로 내려올 때 대관령 발밑에 있는 구산마을까지 횃불을 들고 나가 신을 호위하고 오며 놀았던 길놀이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신통대길 길놀이는 해마다 강릉시 21개 읍면동과 지역의 사회문화단체 등 20여개 이상의 팀이 참여해서 다양한 내용과 새로운 표현양식의 길놀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현재 신통대길길놀이는 본격적으로 단오제가 시작되는 음력 5월 3일 저녁, 단오장으로 나가는 국사성황부부신의 행차를 호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는 신통대길 길놀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단오전통의 힘이고 강릉시민의 저력입니다. 신통대길 길놀이는 놀이를 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길가에서, 또는 성내동 광장에 모인 구경꾼들 모두 하나가 되는 거대한 집단놀이입니다. 길놀이의 성패는 주변 구경꾼들을 얼마나 많이 끌어들여 보다 큰 놀이를 만들어내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통대길 길놀이는 지금은 사라졌거나 그 내용이 조금 변형된 강릉단오제 전통에서 비롯한 놀이입니다. 흔히 길놀이는 두 개의 성격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공동체 제의에서 신을 모셔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수호신을 앞세우고 다니면서 잡귀를 물리치고 신이 다스리는 영역을 확인하려는 목적에서 했습니다. 강릉단오제의 전통에는 이 두 종류의 길놀이가 모두 있습니다. 하나는 4월 보름 대관령에서 신을 모시고 강릉시내로 내려오는 국사성황 행차이고 또 하나는 대관령 기간 중 괫대를 앞세우고 무당패와 탈놀이꾼들이 시내의 여러 성황당과 관청을 돌아다니던 길놀이입니다. 조선조 당시 영신행차는 4월 보름날에 했습니다. 대관령에 올라가 제를 올린 후 국사성황을 모시고 내려온 일행은 저녁 무렵 산 아래 마을 구산에 닿습니다. 가장 중요한 신체인 신목과 신위를 모시고 대관령 50리 길을 걸어 내려온 일행은 구산성황당에 이르러 쉬면서 피곤을 달랬습니다. 구산은 역원이 있어서 말을 갈아탈 수 있었기에 이래저래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국사성황을 기다리는 성내의 사람들은 마음이 바빴습니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는데 서낭님은 오시지 않고, 그래서 기다리다 못한 사람들이 저마다 손에 횃불을 들고 구산으로 신을 마중나왔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횃불로 신의 길을 밝히면서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신행차인 것입니다. 행차가 (홍제동) 신북 근처에 이르면 두 패로 갈라서 횃불싸움을 하였습니다. 이 싸움은 승부가 날 때까지 하는데 이긴 쪽에서는 환호를 올리고 농악대에 맞추어 춤추고 풍년을 기원하고 헤어졌다고 합니다. 신목과 신위는 대성황사에 안치하고 단오가 되면 본격적인 단오제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아름다운 신의 길놀이는 20세기 초 조선조와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강릉단오제는 관의 이속들이 주관하던 행사였기에 더 이상 공식적인 신의 행차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967년 강릉단오제는 중요무형문화재 13호로 등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영신행차는 5월 3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강릉단오제의 굴절된 전승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조 말까지 강릉단오제의 중요한 제의는 모두 대성황사에서 했습니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성황사는 사라졌습니다. 어려운 형편가운데 중앙시장 상인들이 단오제를 맡으면서 대관령에서 모셔온 신은 홍제동 여성황당에 안치했습니다. 여성황당에서는 단오제를 치를 수 없어 행사장이 지금의 남대천 모래사장으로 옮겨진 것도 그 때의 일입니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신을 모시고 가는 영신행차는 5월 3일 여성황당에서 남대천 굿당으로 모셔가는 행사로 바뀐 것입니다. 저마다 손에 횃불을 들고 신을 모시는 것과 패를 갈라서 놀던 횃불싸움은 사라졌지만 신을 모신 길놀이로서의 영신행차는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습니다. 신통대길 길놀이는 이러한 영신행차의 맥을 잇는 새로운 놀이입니다. 시민들이 다 함께 신을 모시고 축제마당으로 나간다는 의미망 속에서 영신행차의 하나로 놀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의 길놀이는 단오제 기간 중에 벌어졌습니다. 조선조 단오제에서 제례와 무당굿은 주로 대성황사에서 치른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이외에도 중요한 행사가 있었는데 괫대를 앞세우고 강릉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놀이를 벌인 것이었습니다. 이 길놀이에서 의미있는 것은 신간의 일종인 괫대의 존재입니다. <증수임영지>에서는 무당들이 각색의 비단을 달아 우산을 드리우듯한 모양의 화개(괫대)를 만들어 5월 5일 힘이 센 사람들에 들려 앞세우고 창우배들이 잡희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아키바 다카하시는 단오제 기간 중 괫대를 앞세운 무격들이 대성황에서 약국성황, 소성황을 돌아 성내의 시장, 전세, 대동, 사창 등 여러 관청을 다녔는데 이때 힘센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다투어서 괫대를 받들어 모시고자 경쟁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조선조말 관노가면극에 참여했던 김동하옹은 '괫대는 서낭님이라 그랬는지 탈놀음이 끝나면 앞에 둘이 메고 뒤에 둘이 둘러메고 다녔다'고 증언했습니다. 모든 기록이 길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신체로 괫대를 모셨다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무당과 탈놀이패로 구성된 일행은 괫대를 모시고 여러 성황당과 관청을 돌아다니면서 길놀이를 하고 목적지에 이르면 탈놀이를 한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길놀이를 하면서 힘께나 쓰는 젊은이들이 괫대를 서로 다투어 메었다는 내용이 특이합니다. 이는 길놀이 가운데 신과의 접촉을 꾀하는 신성한 놀이가 벌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괫대는 상당히 무거웠던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임동권의 조사에 의하면 무게가 40관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것을 멜 수 있는 사람은 상당히 훈련된 장사였을 것입니다. 괫대는 강릉단오제에 등장하는 매우 독특한 신간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렵습니다. '괫대메기'는 괫대가 곧 서낭신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메는 사람이 직접 신성을 접하는 신앙적 의미가 강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남들보다 월등한 힘을 과시함으로서 당당한 남자로서의 명성을 얻을 수 있는 흥미있는 놀이었을 것입니다.
신통대길 길놀이는 읍면동을 주 단위로 참가합니다. 주제는 해마다 조금씩 바뀌지만 주로 강릉단오제의 추억과 강릉의 전통, 또는 마을의 다양한 모습 등 입니다. 기존에 놀이화했던 주제를 다시 한 번 다듬어 보다 세련되게 표현한 마을도 있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나온 참가팀도 있습니다. 신통대길 길놀이의 존립이유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간을 투자하고 생각을 모아서 마을의 전통과 강릉지역사회의 문화적 특징, 단오제에 얽힌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발견해낸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주제에 관해 고민을 많이 하고 다양한 주제를 끌어내어 앞으로 더 많은 강릉과 단오의 이야기가 놀이화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길놀이에 적합한 표현방식을 찾아가는 과정도 소중합니다. 서양의 축제는 대부분 퍼레이드, 즉 길놀이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당놀이가 많은데 이와 동시에 한국의 길놀이 양식을 찾아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통대길 길놀이는 가능한 많은 주민들이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골고루 참여하여 화합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내용으로는 단오영신횃불놀이, 단오 난장의 모습, 오징어후리질, 봉수대, 경포호수 뱃놀이, 장치기놀이, 은행나무 전설, 강문진또배기 등 마을의 민속, 전설, 생업 등을 주제로 삼아 꾸민 놀이들이 관심과 인기를 끌었습니다. 신통대길 길놀이는 강릉단오제 전통을 가장 민주적으로 살려낸 새로운 축제입니다. 신과 인간이 만나는 신성한 놀이를 현대적으로 재현하여 축제가 주는 해방감을 누리는 가운데 공동체의식을 강화합니다. 최근 강릉단오제는 공연중심의 보는 축제로 가는 경향이 있었는데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신통대길 길놀이 덕분에 축제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참여형 축제는 세련되게 다듬기 어렵고 공연물로 만들기도 힘들어서 그들만의 축제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점차 단순한 볼거리보다 하나가 되는 공동체 체험을 원하고 있습니다. 길놀이는 축제의 주인이 스스로 즐길 때 터져 나오는 집단 신명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통대길 길놀이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맞춤형 축제가 될 만합니다. 신통대길 길놀이는 전통을 현재 우리 삶속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되살릴 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힘으로 바꿔줄 수 있는 매력있는 문화콘텐츠입니다. 무엇보다 단오제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사라져가는 신명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오늘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즐거운 축제, 행복한 놀이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통대길 길놀이는 2011년 강릉단오제위원회가 새롭게 시작한 강릉단오제 문화콘텐츠입니다. 원래 강릉단오제는 길놀이가 많았습니다. 4월 보름 구산으로 손에 횃불을 들고 나가 신을 마중나갔던 길놀이와 단오제 기간 중 화개를 앞세우고 여러 성황당과 관청, 그리고 시장을 다니면서 놀았던 길놀이가 그것입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꾸미는 놀이라는 점에서 축제정신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신통대길 길놀이는 해마다 변화가 있지만 단오의 추억, 마을의 민속, 전설, 생업 등을 주제로 삼아 놀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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