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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무속신앙, 제주도 영등굿에 대하여(칠머리당영등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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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무속신앙, 제주도 영등굿에 대하여(칠머리당영등굿)

제주도와 무속신앙, 제주도 영등굿에 대하여(칠머리당영등굿)
제주도와 무속신앙, 제주도 영등굿에 대하여(칠머리당영등굿)

마을 굿 가운데 제주도의 당굿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그중에서도 해녀들이 하는 당굿의 내용과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제주도는 아름다운 환상을 주는 꿈의 섬입니다. 바위에 부딪치는 흰 파도, 끼욱거리는 갈매기, 숭숭 구멍이 뚫린 검은 돌로 쌓인 돌담은 삘기로 엮은 지붕과 잘 어우러지고 노란 유채화, 열대식물이 줄지은 가로수의 시원함, 제주도의 모든 이국적인 풍물은 가슴을 들뜨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날 것을 꿈꾸고 한 번쯤 다녀온 후라면 두고두고 감미로운 추억을 음미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관광객들에게 제주도는 구체적인 삶을 사는 현실적인 공간으로 좀체 인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사는 현장은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제주도는 육지와 고립되고 땅이 척박하여 수확이 많지 않았지만 조정의 요구로 막대한 공물을 바쳐야 하는 수탈의 대상이 되어온 섬입니다. 또한 왜구와 몽골 등 외적의 침입을 받았고 현대에도 4. 3 항쟁으로 민중들의 고통이 극심했습니다. 한반도 남쪽 끝에 붙은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 하나만으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수난의 역사를 지녀온 제주도민의 삶은 그래서 훨씬 더 억척스러운 것이었고 절박했습니다. 살아가기가 힘들수록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하여 삶의 의미를 확인하고 보다 나은 내일을 믿고 싶어 합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생활의 위협을 느낄 때면 으레 심방을 불러 굿을 하였습니다. 심방은 제주도에서 무당을 부르는 말입니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당이 있어 1년 내내 풍농·풍어와 무사고를 비는 굿이 끊이지 않는 곳이 제주도입니다. 남자들은 나라에서 요구하는 대로 유교식 제사를 모셨지만 그들보다 몇 배나 더 힘겨운 생활을 해야 했던 여자들은 오로지 굿에 매달렸습니다. 살림하고 아이 키우고 밭일하고 온몸이 퍼렇게 얼 때까지 바다에서 물질하고 열 몫의 일을 해도 부족했던 제주도의 여자들은 오직 무속신앙을 통해 삶의 질곡을 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제주시 건입동에서 전승하는 칠 머리 영등굿은 바로 이 같은 제주도 여자들이 힘을 모아 바다의 해산물이 잘되고 풍요한 삶을 기원하기 위해 벌이는 당굿입니다.

육지와 제주의 영 등신

영등은 비바람을 일으키는 신입니다. 우리나라 중부지방 이남에는 흔히 영등할머니 신앙이 보이는데, 이 신은 2월 초하루에 내려와서 15일경에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습니다. 영등할머니가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 해에는 비를 맞아 초라하게 보이도록 하려고 비를 몰고 오기 때문에 풍년이 들고, 딸을 데리고 오는 해에는 치맛자락이 나부껴서 예쁘게 보이게 하려고 바람이 불기 때문에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널리 분포되어 있습니다. 종잡을 수 없는 바람의 성격이 심술 맞은 시어머니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비바람은 농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영등할머니를 아주 무서워하고 조심합니다. 이때는 논밭을 갈지 않고 물건을 사고팔지 않는 등 많은 금기가 따릅니다. 각 가정에서는 부엌이나 장독대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하면서 농사가 잘 되기를 빕니다. 어촌에서도 비바람이 순조로워야 고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신으로 모십니다. 영등할머니가라고 부르는 제주도의 영 등신은 육지와 또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기본 성격이 바람이고 한때 잠시 왔다가 돌아가는 신이라는 속성은 같습니다. 영등할머니는 본래 강남천 자국에 사는 신인데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제주도 동쪽 끝에 있는 구좌읍 소섬으로 들어옵니다. 고동의 한 종류인 보말을 잡아먹으며 섬을 도는데 이때 해녀가 채취하는 미역, 전복, 소라의 씨를 뿌려 번식시켜준다고 믿습니다. 또 어업이나 농업에도 풍요를 준 뒤 보름이 되면 다시 소섬을 거쳐 돌아간다고 합니다. 제주도의 영등 바람은 서북 계절풍입니다.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영등할머니가 제주에 머무는 보름 동안은 배 타는 것을 금했다고 합니다. 제주의 2월은 비바람이 그치지 않는 위험한 계절입니다. 고동과 소라의 속도 텅 비어 버립니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은 영등할머니가 소라, 전복, 미역 등 해녀들이 채취하는 해산물을 다시 풍성하게 해 준다고 믿는 것입니다. 해녀들은 오로지 그 믿음으로 잔인한 자연을 극복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쳐 바다에 나갈 수 없는 고난의 시간을 제주 사람들은 영등굿을 통해 새 봄을 맞이하는 생명의 시간으로 바꿉니다. 이제부터 살펴볼 칠머리당 영등굿은 제주 사람들이 자연의 위험한 고비를 극복하고 풍성한 수확을 확신하는 강인한 의지가 만든 의례입니다.

칠머리당영등굿

제주시 건입동에서 하는 칠머리당 영등굿은 해마다 음력 2월 14일에 하는 영등 송신제의 하나입니다. 2월 초하룻날에도 간단히 영등 환영 굿을 하지만 본격적인 굿은 영등할머니를 보내는 14일에 합니다. 칠 머리 영등굿은 1980년 12월 21일 중요 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칠머리당영등굿의 주축은 건입동 어촌계에 속해있는 해녀들입니다. 흔히 해녀라고 부르지만 제주에서는 물에 잠긴다고 하여 잠녀, 제주사투리로는 좀 긴다고 해서 아래 하를 써서 해녀라고 부릅니다. 건입동은 제주에서 큰 어항의 하나인지라 선주 부인들도 적잖게 오는 편이지만 가장 굿에 열심을 내는 층은 직접 바다에 생명을 맡기고 있는 해녀 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등굿이 가까워지면 해녀들은 하루를 온전히 내어 공동작업을 한 뒤 가장 좋은 어물을 골라 굿상을 차립니다. 제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해녀들이 직접 준비합니다. 굿상은 싱싱한 어물이 통째로 올라가 푸짐한데 그중에서도 동글동글 돌래떡은 신에게 바치는 가장 중요한 제물입니다. 용왕 상의 제물이 다 준비되면 해녀들은 집으로 돌아가 각자 조상에게 바칠 상을 차립니다. 영등굿 날 아침이면 해녀들은 구덕에 제물을 담아 등에 지고 한 손에는 작은 상을 들고 와서 정성껏 차리는 것입니다. 메·떡·생선·나물·술·물·그리고 돈을 얹은 쌀·향과 초를 놓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굿당은 각자의 집에서 차려 내온 상으로 가득 찹니다. 칠머리당은 원래 건입동 포구에 있었는데 산지항 축항공사로 1984년 지금 자리로 옮겼습니다. 지금은 제주항 동편 사라봉과 별도봉의 중간 바닷가 언덕에 있습니다. 칠머리당은 마을을 수호하는 본향 신이 거처하는 당입니다. 당에는 3개의 바위가 있고 각각 두 분의 신의 이름을 적어두었는데 서쪽부터 영등 대왕과 해신 선왕, 중앙에는 도원수 감찰 지방관 요 왕해 신부인, 동쪽에는 남당 하르방 남당 할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중앙의 신들이 마을의 본향 신 부부입니다. 굿은 칠머리당의 당맨 심방이 합니다. 당맨 신방이란 당을 매고 있는 즉, 당골 무당이라는 뜻입니다. 현재는 안사인 심방의 뒤를 이어 김윤수 심방이 당을 매고 있습니다. 안사인은 이달 춘 심방의 뒤를 이어 30년 동안 칠머리당을 매었던 심방인데 굿은 열아홉 살부터 시작했습니다. 22대째 내려오는 명도를 물려받은 심방으로 제주도 전역에서 손꼽히는 유능한 사제이며, 특히 드라마틱하게 춤추는 굿은 아무도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김윤수 심방은 4대째 내려오는 세습무이지만 무병을 앓고 굿을 시작했습니다. 큰어머니 문옥선으로부터 굿을 배웠고 1995년 안사인의 뒤를 이어 칠머리당영등굿의 기능보유자가 되었습니다. 김윤수의 처 이용옥도 뛰어난 심방으로 현재 전수교육조교입니다. 그 외에 중요 무형문화재 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에 속해있는 심방들이 굿을 합니다. 김윤수 심방은 굿을 하러 가기 전에 먼저 조상을 모십니다. 평소 집안에 모시는 조상은 신칼, 천문, 요량으로 이것이 있어야 심방이 굿도 하고 점을 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굿하기에 앞서 조상에게 고한 뒤 소중히 모시고 나갑니다. 나중에 굿을 마친 후에도 조상에게 다시 인사를 합니다. 굿을 하기에 앞서 제일 먼저 심방들이 하는 일은 기메를 오리는 것입니다. 흰색을 기본으로 하고, 빨강, 노랑, 파랑 등 색종이를 오려 다양한 형상을 만드는 기메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도구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신의 모습이지만 깃발이나 꽃도 모두 기매라고 부릅니다. 먼저 굿청에 큰 대를 세우고 굿상은 신전이자 문이 되는 살장으로 장식합니다. 과거 엽전의 모습을 오린 지전, 신의 문을 열어주고 가르쳐주는 감상기, 발 지전, 솔 전지 등 기메는 일상의 공간을 신의 세계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합니다. 기메는 현재 전통 종이공예로도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굿은 제주인 해녀회장이 제상에 촛불을 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해녀들이 순서대로 3배를 하고 심방은 상위에 무구를 올려 굿이 시작하는 것을 알립니다. 제주도의 모든 굿은 신을 청해 들이는 초감제로 시작합니다. 수심 방 김윤수가 향로를 받쳐 든 소미와 함께 사방에 절합니다. 소미는 보조 무당을 말합니다. 이어 심방은 장구를 들고 굿당을 향해 앉아서 베포도업침을 창합니다. 베포도업침은 서로 꽉 붙어 있던 하늘과 땅이 우주 개벽으로 틈이 생겨 떨어지고 일월성신이 생긴 후 이 땅에 국가가 형성될 때까지를 차례차례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굿하는 장소와 날짜를 알리는 날과 국 섬김을 하고 영 등신에게 오늘 굿하는 목적을 아룁니다. 이를 연유 닦음이라고 하는데 굿의 목적이 새로 곡식을 많이 주어 먹고 쓰게 마련하고 저 바다에 미역·고동·전복·소라를 많이 따게 해 달라는 데 있음을 고합니다. 집집마다 가져온 요 왕 다리는 한 필의 미녕(무명)으로 배 이름·선주·선원들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습니다. 심방은 수많은 요 왕 다리 들을 앞으로 끌어다 놓고 보면서 축원을 해주는데 이를 예명 올림이라고 부릅니다. 먼저 동장·어촌계장 등 마을의 대표들을 축원해 주고 차차 개인으로 넘어갑니다. 이어서 김윤수 심방이 군문열림을 합니다. 신이 하강하려면 먼저 신궁의 문을 열어야 하니 바로 신궁문을 여는 과정입니다. 소미가 문밖에서 댓잎으로 술을 뿌려 신에게 대접합니다. 심방은 굿당과 밖을 여러 번 오가면서 춤으로 군문을 엽니다. 지전을 태워 인정을 걸고 신을 부르는 감상기(잎이 붙은 댓가지에 백지를 감았다)를 들고 춤으로 모셔오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다가 마침내 무섭게 빠른 속도로 난무합니다. 문득 네 개의 신칼과 산판을 허공에서 한꺼번에 던져 신의 뜻을 알아봅니다. 그 결과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소위 “산 받아 분부 사룀”은 제주도 굿만이 갖는 독특한 성격입니다. 강신무라면 스스로 신격화되어 신의 말인 공수를 줍니다. 세습무라면 축원만 할 뿐 신과의 거리를 시종일관 유지합니다. 그러나 제주도 무속에서 심방은 스스로 신들리지는 않으나 점괘를 해독함으로써 신의 뜻을 읽어내는 능력자로 등장합니다. 분부 사룀은 바로 이렇게 심방이 해독한 신의 뜻을 전하는 굿으로 해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해녀들은 몹시 집중하여 듣습니다. 소미는 물과 쌀이 든 그릇을 앞에 놓고 새다림을 합니다. 새다림은 원래 사악한 것 즉 사(邪)를 쫓는 의식인데 심방의 노래는 와전되어 조류인 새를 쫓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소미는 흥겨운 곡조로 새를 쫓아 모든 부정을 가십니다. 배고파하는 새들을 가리키면서 쌀과 물을 주어서 쫓아내어 자손이나 집안에 나쁜 일을 생기지 않게 하자는 노래입니다. 이어서 심방은 앉아서 장구 치며 신들을 굿당에 좌정시키는 <살려옵서>를 합니다. 영 등신을 비롯 제주도의 무속에서 믿는 1만 8 천신을 모두 부르고 앉으시라고 권하는 제차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이 즐겁게 굿당에 잘 앉으셨는지 확인하는 분부 사룀을 다시 한번 하는 것으로 초감제를 마칩니다. 신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추물 공연을 한 뒤에 심방은 마을의 토지 관인 본향을 맞는 굿을 합니다. 본향은 쉽게 말하면 마을 수호신입니다. 그런데 제주도의 본향은 대부분 내력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방이 구송하는 내용을 보면 칠머리당의 본향은 원래 중국에서 왔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하늘, 어머니가 땅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역적을 물리쳐 공을 세운 뒤 바다의 용왕국에서 수신을 부인으로 얻고 한라산에 올라가 내려보다가 칠머리당의 주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본향 신은 2월에 내려오는 영 등신을 거느리고 제주도 여기저기를 구경하다가 오늘 송별제를 하며 액을 막아주고 해녀들을 보호해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심방은 본향 차 사임을 표시하는 색동의 팔 찍 거리를 팔에 두르고 빠르게 춤춥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은 일어나서 두 손을 모으고 신이 오시기를 빕니다. 심방은 격렬히 춤추다가 본향을 따라온 잡귀들을 먹이는 술을 병째 당밖으로 던집니다. 술병의 주둥이가 밖으로 나가야 잡귀들이 충분히 먹었다고 생각합니다. 본향 신이 오시면 굿을 주관하는 해녀 대표를 비롯한 삼헌관이 제물을 바치고 절을 합니다. 이어서 다른 사람들도 본향에게 절을 합니다. 요 왕 맞이는 바다의 용왕을 모시는 굿으로 의뢰자인 해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굿이기도 합니다. 제주도에서는 이런 큰 굿을 할 때는 다시 초감제를 반복합니다. 즉 베 포도 업 침, 날과 국 섬김, 연유 닦음, 군문열림, 새다림 등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소미들은 요 왕님이 바다에서 올라올 수 있도록 길을 내고 문을 만듭니다. 잎이 붙은 1미터 크기의 댓가지를 8개씩 양쪽으로 나란히 꽂습니다. 저승 돈인 지전과 이승돈인 천 원짜리를 하나씩 감아놓고 길의 끝에는 요 왕상과 요 왕 다리를 모두 놓습니다. 심방은 먼저 군문을 열기 위해 요 왕길을 돌아보고 저승 돈인 지전을 태워 신에게 인정을 걸게 한 뒤 감상기로 신을 청하는 춤을 추는데 느리게 시작된 춤은 점차 빨라져 마지막엔 격렬한 난무 끝에 신칼을 던지게 됩니다. 군문이 열렸다는 산을 받아 분부 사룀을 하고 신을 좌정시킵니다. 이어서 조상을 모시는 군웅 만판이 이어집니다. 심방이 느린 곡절로 노래를 시작하자 아주머니 서넛이 나와서 고운 자태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무속악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제주도 전역에서 흥겨운 자리마다 부르는 서우젯소리입니다. 강림 차사가 앉았던 방석이라는 시루떡을 소미 셋이 번갈아 높이 던져 올렸다가 받으면서 흥겹게 노는 나까시리놀림이 끝나자 심방은 지장 본풀이를 부릅니다. 지장은 어려서 부모 잃고 커서는 남편과 시부모마저 잃은 지지리도 박복한 여인인데 후에 불공을 들여 새의 몸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지장을 일으키면 답답한 일이 생긴다고 하여 본을 풀어 줌으로써 액을 막는 것입니다. 이제 요 왕 문을 엽니다. 심방은 먼저 요 왕길을 돌아보고는 요 왕이 오시기에 너무 길이 험하다면서 길을 치우기 시작합니다. 여기저기 나 있는 작은 해초들을 신칼로 베고 벤 것을 치우고, 또 돌을 멀리 던져 버린 뒤 길을 고르는데 실제로 작대기와 신칼을 들고 바닥에 놓은 뜸북나물과 돌을 치우면서 실연합니다. 길이 깨끗해지면 요 왕상 위에서부터 요 왕 문을 지나도록 바닥에 길게 요 왕 다리를 깝니다. 이때에는 사람들이 요 왕에게 바친 미녕을 모두 깝니다. 심방은 춤으로 요 왕신을 맞아들이고는 길이 잘 치워졌는지 여부를 산 받아 전달합니다. 요 왕 문을 열기 전에 댓잎 양쪽을 위에서 묶어서 터널 같은 문을 만들고 해녀들이 첫 번째 문인 초군문 앞에 나란히 앉습니다. 심방은 노래 부르면서 신칼로 산을 받아 문이 잘 열렸는지 여부를 묻고 해녀들은 인정을 걸며 술을 대접합니다. 산이 맞으면 댓가지를 뽑고 다음 문으로 옮겨가고 그때마다 해녀들은 절합니다. 문이 다 열리면 다리와 댓가지는 태워 버립니다. 영등할머니는 산과 들, 바다에 풍성한 씨를 뿌려주는 신입니다. 해녀들에게 바다는 또 하나의 밭입니다. 여기에 씨를 뿌려 해산물이 풍성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바로 씨드림입니다. 원래 시드림은 해녀들이 바닷가를 뛰어다니면서 좁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칠머리당은 바닷가에서 언덕 위로 자리를 옮겼기에 심방이 멍석 위에 좁씨를 뿌리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이어서 심방은 어느 바다에 해산물이 풍부할 것인가 미리 알아보는데 이를 씨점이라고 합니다. 심방은 멍 석자 리위에 전복 씨, 미역 씨, 해삼 씨, 떡조개 씨, 문어 씨, 천초 씨 등을 차례로 뿌리면서 올해는 어느 바다에 해산물이 많이 날 것인가 예언합니다. 마을 주민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액을 막는 의식이다. 신들에게 잔을 올리고 가엾게 죽은 모든 영혼을 위로합니다. 이어서 심방은 쌀 점을 통해 굿에 온 주민들 한 사람 한 사람 식구들의 한 해 운수를 점칩니다. 영감놀이는 바다의 풍어를 가져다준다는 영감 신을 대접하는 굿놀이입니다. 영감은 도깨비 신을 말하는데 본래 7형제로 서울 먹자고을 허정승의 아들들입니다. 영감은 하얀 천으로 얼굴을 싸고 눈, 코, 입만 뚫은 원초적 가면을 쓰고 양손에 횃불을 들고 다니며 돼지고기, 술, 수수 범벅을 좋아하여 술에 취한 모습입니다. 영감들은 시끌벅적 떠들면서 막내를 찾아 굿판으로 들어옵니다. 심방은 돼지머리와 음식이 놓인 상 앞에 마주 앉아 영 등신을 우도 연평으로 송별코자 영감을 청했으니 잘 모시고 가달라고 부탁합니다. 영감들은 상이 시원치 않다고 불평하다가 승복하고 술과 고기를 얻어먹고는 모형배에 조금씩 제물을 담습니다. 영등을 싣고 갈 배는 1미터 정도 길이의 작은 배인데 붉은 헝겊으로 돛을 달고 산 닭 한 마리가 들어 있습니다. 나중에 바다에 띄워 영 등신을 송별하게 됩니다. 이제 굿은 거의 끝났습니다. 해녀들은 본인이 바친 상 앞에서 지를 만듭니다. 밥·과일·나물·생선을 조금씩 떼어 주먹만큼씩 한지로 싸서 만드는지는 식구수대로 또는 바다에서 죽은 사람을 포함해서 정성껏 준비합니다. 배 부리는 사람은 선원들 것도 함께 싸고 용왕님께 드리는 지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모두 영 등신을 송별하기 위해서 바다로 나갑니다. 이어서 싸온 제를 물에 던져 지드림을 합니다. 요 왕님께 몸수 편하게 도와주고 수중고혼을 돌보아 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바다에 떠도는 객귀를 위해서는 이것저것 섞어 무 레밥을 만든 걸 명을 뿌려 줍니다. 물길을 보아 소섬 쪽으로 나갈만한 곳에 오면 모형배를 띄웁니다. 배가 마을을 나가지 않고 돌아오면 액이 닥쳐 또다시 굿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철렁 바다에 배를 띄우자 곧 배는 엎어졌고 닭은 소리 한번 못 지르고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마을의 액은 다 막았고 영 등신도 편안하게 제주를 떠났습니다. 앞으로 바다의 어물은 풍성하게 될 것이고 어민들은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칠머리당영등굿의 존재가치

이상으로 영등굿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해녀들은 언제 물속에서 숨이 다하여 죽을지 모르는 현실적인 위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 왕 맞이나 지 아룀을 통해 요 왕을 대접하고 씨를 뿌리는 영등굿은 큰 안심과 희망을 주었을 것입니다. 오늘까지 영등굿을 지켜 온 사람은 해녀들이었습니다. 해녀는 점점 그 수가 줄어 30, 40대는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 2016년 11월 해녀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직업여성으로서 진취성과 독특한 문화가 등재 배경입니다. 해녀들의 문화 가운데 영등굿 역시 큰 몫을 담당합니다. 굿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해녀의 경제적 중요성을 인정받고 사회적 위치를 공고히 해왔으며 공동체의 단합을 도모했습니다. 제주도의 해녀들이 존재하는 한 영등굿 역시 살아남을 것입니다. 해녀들의 고단한 삶과 희망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제주도 칠머리당영등굿은 지금도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습니다. 2009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16년에는 해녀문화 역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습니다. 칠머리당은 제주시 건입동을 돌보는 본향당입니다. 대부분 마을굿은 남자들이 중심이 되는데, 칠머리당영등굿은 해녀들이 주관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영등굿 제차 가운데 요 왕 맞이, 시드림이나 씨점, 지드림 등은 모두 해녀들의 삶과 이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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